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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연기, 댄스, 요리 오디션에 이어 극강 서바이벌이 시작된다!
이름 하야 세계최초 대국민 오디션, ‘욕의 맛’!
고삐리 일진부터 디스전문래퍼, 자갈치 할매, 욕쟁이 경찰, 지하철 막말녀 등
전국 각지 욕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레전드를 가릴 욕 배틀이 펼쳐진 가운데,
세상사는 맛을 욕 안에 모두 녹여낸 남다른 이빨(?)의 소유자
답답한 세상, 욕으로 풀어줄 지옥에서 온 할매 ‘헬(Hell)머니’가 온다!
헬머니
그러나 총신이 길고 아름다운데다가 러시아식 스파이크 총검까지 달면 무려 173cm를 넘길 정도로 과도하게 길었다.[9] 이 때문에 실전에서의 사용이 불편했고 조준기 조정이 힘들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특히 당시 러시아 공업력의 한계로 1차 대전 초기까지 외국 업체들에게 외주를 맡겨 생산해야 했는데, 설계도에 당시 보편적으로 쓰이던 인치도 미터도 아닌 '아르신(арши́н)'이라는 러시아식 도량형을 사용하여 외주를 받은 외국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또한 사용탄인 7.62×54mmR의 불량률이 상당히 높아서 전체적 평가가 썩 높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러시아군의 주력 소총으로 쓰였고, 동부전선에서 독일 제국군 육군이 대거 노획해 제식 병기의 하나로 써먹기도 했다. 단, 탄약과 부품 등을 노획에 의존해야 했기에, 소모가 적은 독일 제국 해군 및 육군 후방 부대 위주로 지급되었다.
1차대전 후 소비에트군의 소요가 대거 제기되자 1930년에는 길이를 123.2cm로 줄이고 미터법을 적용한 조준기를 채용한 M1891/30이라는 개량형이 등장했다. 여기에서 길이를 101.6cm까지 더 줄인 M1938 카빈도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에는 총열길이를 51.7cm까지 줄인 M1944도 출시되었고, 이후 1959년에 M1938을 기초로 한 M1891/59가 등장해 서방의 침략에 대비하여 위성국에 공여된 것이 모신나강 계열의 마지막 소총이다.
2차 대전 직전, 기계화에 박차를 가하던 소련군은 모신나강에 한계를 느끼고 후속 소총의 개발을 서두른다. 그러나 의욕작인 자동소총 시모노프 AVS-36는 망했고 SVT-1938/40[12]으로 모신나강을 완전히 대체하려는 계획도 독소전이 끝남에 따라 2차 대전 중에도 계속 모신나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항일 독립군 시절에는 애용되었던 무기지만 반대로 6.25나 베트남 전쟁 당시엔 공산군이 사용했던 적성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룡대 1층의 전시관에서 "항일 독립군 소총"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잘 관리된 모신나강을 볼 수 있다. 한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선 반쯤 부서진 모습으로 북한군의 소총이나 베트콩군으로부터 노획된 총기로서 전시되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군 무기로 사용되었다. 6.25때 벌어진 고지전에서 북한은 다수의 저격병을 운용했는데, 많은 수의 한국군 일선 지휘관들이 북한군 저격수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따꿍총, A식 보총(아식 보총)라고 불렀다. 따꿍총이란 이름에는 총을 쏘았을 때 따꿍소리가 나서 그렇게 불렸으며, A식 보총은 '아라사(러시아)식 보병총'의 약자. 북한군이 흘리고 간 모신나강을 민병대나 대한민국 국군에서 노획해 쓰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를 묘사한 글에서는 '따꿍총은 반동이 심하여 쏘았을 때 나가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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