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 종이 영화관

엽문

영화 2020. 4. 2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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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 영 화 링 크 >

이소룡이 존경했던 단 한 사람

1930년대 중국, 수많은 무술가들의 메카가 된 불산. 그 곳에서 ‘엽문’은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영춘권의 고수이자, 백전불패를 자랑하는 신화와 같은 실력으로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해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산은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먼저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불산의 무술가들을 비열한 방법으로 하나하나 격파해 나간다. 심지어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무술가들이 늘어가자 엽문은 큰 충격에 빠진다. 그 후 엽문은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던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국민들이 일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무예를 가르치며,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무술로 일본에 저항하는데...

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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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엽계문(葉繼問, Ip Kai-man),[4] 1893년 10월 1일에 청나라 광동성(廣東省) 불산(佛山)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진화순(陳華順)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지만, 당시 진화순의 나이가 70세여서 그의 제자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오중소(吳仲素)로부터 대부분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엽문이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진화순은 병으로 사망하는데, 진화순의 유언 중 하나가 바로 오중소로 하여금 계속해서 엽문에게 영춘권을 가르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엽문은 16세에 친척의 도움을 받아 홍콩으로 이사했고, 1년 뒤 홍콩의 일류 대학인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한 영국인 경찰관이 어떤 중국인 여자를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엽문은 그 일에 개입했다. 경찰관이 엽문을 공격하려 했으나 엽문은 경찰관을 쓰러뜨리고 친구와 학교로 도망친다. 이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 남자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그 남자는 엽문을 만나 어떤 무술을 썼느냐고 묻는다. 남자는 엽문에게 엽문의 자세가 '딱히 좋지 않다'고 말하며 치사오(黐手, 이수)로 그의 영춘권을 테스트해 보겠다고 했다. 엽문은 이를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으나 곧 그 남자에게 패배한다. 드라마틱하게도 그 남자는 바로 진화순의 스승 양찬(梁贊)의 큰아들 양벽(梁璧)이었다. 이 사건 이후 엽문은 양벽으로부터 영춘권을 이어 배우기 시작했다곤 하나 양벽과의 만남 스토리 자체가 엽문의 증언뿐 펙트체크를 할수없기에[5] 어느정돈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엽문은 24세에 고향 불산으로 돌아와 중국 국민당의 경찰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친척, 친구, 부하 등 일부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주었으나 공식적인 무술 도장은 열지 않았다. 그리고 1949년 국공 내전이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자 엽문은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도장을 열긴 했으나 제자들이 대부분 한두 달이면 떠나버리는 탓에 엽문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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