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싱 부스 - 종이 영화관

키싱 부스

영화 2020. 4. 2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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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싱 부스

< 영 화 링 크 >

첫 키스를 해버린 엘, 그것도 학교의 인기 넘버원하고! 하지만 그는 넘봐선 안 될 사람. 그와 사랑에 빠지면 평생의 단짝을 잃게 된다. 새가슴 엘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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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화랑들이 금강산을 유람해왔으며 지금도 영랑봉 봉우리와 같이 이름에 남아있다. 영험한 산으로 신라 중심지에서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백수십곳의 사찰이 창건되었고, 고려 시대에도 그 명성은 계속돼 중국 북송 대의 시인 소동파도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이 말을 소동파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단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 9월 21일 己未 1번째기사에서 '중국의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며, 고려에서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라는 말이 중국에 있을 정도다'고 하므로 꼭 소동파가 아니라도 금강산에 대한 소문과 명성이 중국에 퍼져 있었다는 것 자체는 분명하다.

조선시대 수많은 문인들이 금강산을 읊은 작품들이 수없이 많은 점에서도 그렇다. 그저 유람하기 위해서가 아닌 목적에서 금강산 정상에 처음 오른 인물은 신정왕후 조씨의 조카인 조성하였는데, 이가 1865년에 있었던 일이다.

일찍이 금강산의 경치는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태종이 명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자꾸 금강산 타령을 해서 귀찮아한 이야기도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도 백두산과 함께 다른 산과 달리 화려하게 그려놓았고,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한반도 최초의 전기철도[11]인 금강산선을 직접 건설하고, 일본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이 일부러 서울까지 찾아와서 관광열차를 타고 금강산을 여행했을 정도로 금강산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 사례까지 있었다.

영국의 여행가이자 작가로서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고 조선에 대해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세계 어느 명산의 아름다움도 초월한다며 금강산을 극찬했으며,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왕세자 시절에 한국에 방문해 1926년에 금강산을 방문하여 금강산의 경치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활용했던 금강산 전철은 하필이면 노선 대다수가 민통선 및 비무장지대와 일치하는 바람에 지금도 복구하지 못 하고 있다. 거기다 일부 구간은 금강산댐 건설로 수몰된 상태다. 자세한 것은 금강산선 문서를 참조하자.

일제강점기 그 시절인데도 금강산 관광객의 출입관문격이었던 장전항은 관광도시가 되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여관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전항은 전쟁과, 통행의 자유가 없는 북한 치하에서 쇠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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