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상한 생물은, 아직 일본에 있답니다. 아마도. 이웃집 토토로 더보기 미야자키 하야오가 1972년 만들었던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이란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이걸 마음에 들어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시 한 번 디자인과 설정을 바꿔서 다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스토리의 기본 구성이나 토토로의 행동과 표정 연출 등이 거의 동일하다. 그동안 서양풍의 막연한 세계를 다뤄왔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래간만에 구체적인 시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여동생 캐릭터인 사츠키와 메이 자매나 느긋한 매력을 지닌 토토로 등 시대를 앞서간 캐릭터 설정이 돋보인다. 그 외 꼼꼼하기 그지 없는 작화나 보편적인 감명을 선사하는 이야기 등 명실공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중 하나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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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강 스펙타클 탱크 액션이 온다! 소련 육군 소위 ‘이부슈킨’은 T-34 탱크와 몇 명의 대원들로 근처 도시를 공격해오는 독일군 12대의 탱크를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기적적으로 임무를 완수하지만,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3년 뒤, 독일군은 포획한 T-34로 독일군 엘리트 기갑부대를 만들기 위해 포로 중 이부슈킨을 T-34 전차장 자리에 앉힌다. 이부슈킨과 동료 포로들은 T-34를 몰고 함께 탈출을 감행하는데... 더보기 1941년 독소전 초기인 모스크바 공방전 시기, 니콜라이는 군사학교를 마치고 막 전선에 배치된 신참 장교였다. 니콜라이는 트럭을 타고 최전방 전선으로 배치되던 도중 눈이 쌓인 평원에서 1대의 독일군 3호 전차를 마주하게 된다. 군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혹시, 꿈 있어?”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제이크’의 제안으로 미국을 횡단하는 크루에 합류한 소녀 ‘스타’낮에는 잡지를 팔고 밤마다 파티를 즐기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아메리칸 허니들의 뜨거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더보기 콜 오브 듀티: 워존은 출시되자마자 첫 24시간만에 600만 명의 플레이어수를 달성하고 출시 3일 후에는 1500만 명, 10일 후엔 30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배틀그라운드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중에 새롭게 나온 현대전 배경의 밀리터리 FPS의 플레이 방식을 따른 배틀로얄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무료라는 점이 큰 어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PC방 순위에서도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멀티클릭 기준으로 40위권에 거의 맴돌고 있..
똑같으면 재미없지 깨부수고 벗어 던져, 너답게! 오랜 연인이던 조커와 헤어진 ‘할리 퀸(마고 로비)’은 처음 맞이한 해방에 황홀함을 느낀다. 하지만 조커라는 방패막이 사라지자 평생 처음 무방비 상태에 놓인 할리 퀸을 고담시에서 가장 비열한 범죄왕 로만 시오니스(이완 맥그리거)와 고담의 모든 갱들이 노린다.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카산드라라는 소매치기가 로만의 부하에게서 모든 권력과 고담시 지하 세계 전체의 지배권을 차지할 열쇠인 금융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는 다이아몬드를 훔치면서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급변한다. 로만 손에 죽을 위기에 처한 할리 퀸은 헌트리스, 블랙 카나리, 르네 몬토야와 새로운 팀을 결성해 로만에 맞서는데… 더보기 혹평을 하는 측에서는 DC 팀업 무비 징크스를 깨지 ..
도쿄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나츠메(고마츠 나나)는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을 이어받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이사를 온 첫 날 바닷가로 나갔다가 코우(스다 마사키)를 만나게 되고, 둘의 강렬했던 첫 만남은 가느다른 실처럼 서로가 연결되었음을 느낀다. 코우는 그 지방을 다스리는 일족의 계승자. 신을 모셔야 하는 코우의 일족은 매년 열리는 유서 깊은 축제를 주관한다. 나츠메가 처음으로 맞게 되는 축제날. 들뜬 마음으로 축제에 참석하는 나츠메에게 다가온 한 남자는 그녀를 코우에게서 지켜야 한다며 나츠메를 강제로 덥치려 했고, 달려온 코우와 마을사람들에 의해 간신히 범인은 붙잡히게 된다. 하지만 모델 나츠메 강간사건은 전국을 강타했고, 그와 함께 나츠메의 여름날도 함께 저물게..
첫 키스를 해버린 엘, 그것도 학교의 인기 넘버원하고! 하지만 그는 넘봐선 안 될 사람. 그와 사랑에 빠지면 평생의 단짝을 잃게 된다. 새가슴 엘의 선택은? 더보기 고대 중국의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화랑들이 금강산을 유람해왔으며 지금도 영랑봉 봉우리와 같이 이름에 남아있다. 영험한 산으로 신라 중심지에서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백수십곳의 사찰이 창건되었고, 고려 시대에도 그 명성은 계속돼 중국 북송 대의 시인 소동파도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이 말을 소동파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단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 9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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